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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 기어 S3 프론티어의 오늘

3, 2018

최필식
IT 칼럼니스트

첫 삼성 기어는 2013년 가을의 독일 베를린에서 출현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의 바르셀로나에서 기어 2, 돌아온 가을의 베를린에서 기어 S가 차례로 전원을 켰다. 1년 만에 무려 3가지 스마트워치를 연달아 내놓은 삼성은 마치 프린터기에서 찍어내는 듯이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제조사처럼 비쳤다. 적어도 기어 S2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첫 기어가 스마트워치의 가능성을 읽게 해준 공을 무시해선 안된다. 비록 비싼 가격, 매력적이지 않은 겉모습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어의 출현으로 빠른 알림 확인과 앱의 더 빠른 실행, 쉬운 조작성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은 논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을 비롯해 스마트 디바이스 제조사의 스마트워치마다 간과했던 것은 손목이라는 단 한 가지 특수성이었다. 스마트워치는 새로운 유형의 스마트 디바이스라는 특징으로 수많은 이들의 손목을 노렸지만, 이미 손목을 점유하고 있던 시계의 속성은 이해하지 못했다.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 디바이스의 진화와 다르게 스마트워치는 패션과 브랜드의 품격이라는 시계 고유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제조사들이 손목에 차는 제품의 독특한 속성을 간파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짧은 브랜드의 역사는 극복할 수 없어도 손목에 어울리는 장치를 위한 우회로를 뚫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삼성의 기어 S2와 S2 클래식은 스마트 디바이스의 속성과 기존 시계의 속성을 절반씩 섞은 첫 실험작에 가깝다. 환경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과 둥근 시계에 가까운 유사성을 동시에 담아낸 것이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용두 대신 시계 테두리를 돌리는 다이얼에 기반한 독창적인 인터페이스는 시계의 상식에 스마트 디바이스의 혁신을 더한 상징처럼 비쳤다.

기어 S2는 스마트 디바이스와 시계의 상식을 뛰어넘는 제품이었지만, 여전히 친숙하지 않은 점이 남아 있었다. 시계의 패션과 문화에 융화 대신 도전적인 디바이스라는 인상이 강했던 것이다. 아직 시계의 세계에 융화되지 않은 스마트워치보다 좀더 익숙하고 쉬운 스마트워치가 필요해 보였다. 어쩌면 기어 S3의 가장 큰 과제는 많은 이들에게 쉬워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의도라면 프론티어와 클래식 등 두 가지로 출시했던 기어 S3는 그 목적을 달성했다. 2016년 가을 발표된 이 스마트워치는 확실히 시계의 상식에 가까워진 맵시로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으니까 말이다.
(애플 워치의 생명력에 비하면 약과지만) 굳이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은 채 같은 모양새로 2년을 버틴 것은 어쨌든 신선도가 떨어지면 곧바로 폐기하는 삼성의 제품 전략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인 것은 분명하다.

이야기의 빈틈 메운 기어 생태계

삼성에게 기어 S3는 여전히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스마트워치다. 첫 발표 당시 하드웨어에 이야기를 집중한 반면 지금은 기어 S3를 쓰는 환경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옮겨 왔는데, 그만큼 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스마트워치는 삼성 뿐만 아니라 다른 스마트워치와 비교하더라도 흔치 않다.

기어 S3가 기어 S2의 연장선에 걸쳐 있는 제품이라고 하나 프론티어의 이미지는 완전히 다르다. 기어 S2를 얌전한 이미지로 바꿔 놓은 것은 역시 과격해진 기어 S3 프론티어의 만듦새에 있다. 기어 S2보다 화면 크기는 겨우 0.1인치 더 커졌을 뿐인데 그 둘레는 더 커지고 두터워졌다. 그럼에도 시계답게 보이는 이유는 아주 사소한 점을 보완한 때문이다. 만약 디스플레이 주변에 타임존을 그려 놓지 않았다면 기어 S3 역시 ‘손목에 찬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또 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어 S3 프론티어는 일상적인 아웃도어 워치의 인상이 강하다. 커진 시계에 짙고 어두운 색상, 여기에 용두를 대신해 시계의 둘레를 무한 회전하는 톱니 가득한 다이얼을 가진 프론티어는 클래식보다 훨씬 단단하고 강인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어 S3 프론티어가 좀더 활동적인 이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부인하긴 어렵다.

기어 S3 프론티어와 기어 S2 스포츠

적용한 워치페이스는 MR.TIME DEMANTOID

기어 S2에 비하면 기어 S3의 AMOLED 디스플레이는 고작 0.1인치 커진 1.3인치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차이는 그 이상이다. 패블릿이 그랬던 것처럼 스마트워치 역시 좀더 큰 디스플레이에서 느끼는 시원함이 있기 때문이다. 기어 S3는 그 시원함을 갖고 있다. 역시 오랫 동안 큰 디스플레이에 적응하고 보니 작은 디스플레이의 스마트워치가 조금 답답하다. 다만 기어 S3에서 화면을 키운 것만큼 해상도(360×360)는 높아진 게 아닌 탓에 표시된 글자나 아이콘의 세밀함이 살짝 부족하다. 처음은 그 차이를 모를 수 있다. 단지 시간이 지날 수록 눈에 슬슬 걸릴 뿐…

이처럼 크고 시원한 디스플레이와 단단한 겉모습의 기어 S3 프론티어는 꾸준히 그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환경을 개선해 왔다. 덕분에 부족한 앱과 서비스 문제에 할 말이 마땅치 않던 출시 때에 비하면 2년이 지난 지금이야 각 환경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앱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이다. 운동을 하든지, 음악을 듣든지, 지도를 보든지, 낚시를 가든지, 골프를 치는 등 위치 상황에 따라 쓸만한 앱들을 찾는 데 어려움이 거의 없다. GPS를 형식적으로만 담았던 기어 S2에 비하면 야외 활동에서 활용도는 더 높아진 것이다.

굳이 앱을 깔지 않더라도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잔소리를 한다거나 움직임을 유도하기도 한다. 일어나 몸을 돌리라는 지시만 따라도 좋고, 심박 센서가 틈틈히 몸의 상태를 체크해 S헬스에 기록해 놓는다. 기어 S3의 삼성 페이로 결제를 대신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교통 카드로 쓰고, 집에 삼성의 가전 제품을 조작하는 데도 쓴다. 심지어 심심할 때 게임도 즐긴다. 이제 삼성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에서도 쓸 수 있게 된 사실도 중요하다.

고를 수 있는 시계 화면은 기어 스토어에 차고 넘친다. MR.TIME을 비롯해 다양한 워치메이커가 모두 기어 스토어에 입점한 터라 쓸만한 시계 화면이 없다는 것을 단점으로 지적할 수 없다. 시계줄도 교환하기 쉬운 구조로 바꿨다. 폭 22mm의 시계줄이라면 대부분 그대로 쓸 수 있도록 핀을 바꿔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시계줄로 손쉽게 바꿀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쓰려면 배터리 성능과 내구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단 한번 충전으로 1일을 넘길 수 있느냐는 것은 기어 S3에게 따질 필요는 없다. 배터리를 좀더 오래 쓰기 위해 절전 모드나 항상 시계 표시 옵션의 작동 여부, 손목에서 풀렀을 때를 모두 감안하면 가끔씩 충전을 잊어도 다음 날까지 무난하게 쓸 수 있었다. IP68 등급의 방수방진 처리로 비나 습기가 많은 곳에서도 견디는 내구성이 내게 준 피해는 아직 없다. 그저 가끔 ‘물이 들어가 고장을 일으켰다’는 불만의 글을 커뮤니티에서 만날 때마다 뜨끔하다.
 

높아진 기계적 완성도, 실종된 문화적 완성도

이처럼 기어 S3를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길어진다. 2년 전이라면 대부분 맵시를 평가하는 내용으로 대부분을 채우고 이를 활용하는데 부족한 환경을 꼬집으며 마무리 지었을 글이 지금 시점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 이야기의 빈틈까지 메운 것이다. 환경의 완성으로 하드웨어의 질적 수준까지 더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기어 S3를 둘러싼 환경의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음에도 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완벽한 워치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있다. 그 중 하나가 브랜드의 문제다. 시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써 전투력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부분이다.

기어는 스마트워치 시장을 도전하던 그 때 이후로 줄곧 써온 이름이다. 하지만 오늘의 ‘기어’는 스마트워치만의 브랜드가 아니다. 삼성의 웨어러블 브랜드다. 지난 2년 동안 기어라는 이름을 여러 웨어러블 장치까지 폭 넓게 쓰면서 기어는 더 이상 스마트워치의 대표 브랜드가 아닌 상황으로 흘러버린 것이다.

기어 S 시리즈가 강력한 웨어러블일 수는 있지만, 강력한 디지털 시계의 이미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까? 기어 뒤에 붙은 서브 네임으로 스마트워치라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그것은 알만한 사람들에게나 그렇다. 기어 뒤에 시계를 알 수 있는 서브네임 없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2년을 보낸 것이다.

이름이 갖고 있는 기계적 이미지를 부드럽게, 또는 강인하게 각인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을까? 어쩌면 그랬을 지도 모른다. 앞서 ‘시계의 패션과 문화에 융화 대신 도전적인 디바이스’의 방향으로 간 것이라면 이해는 한다. 그럼에도 애석함이 몰려 온다. 기어 S3가 완성형으로 진화하는 동안 스마트워치 브랜드로써 쌓여 있어야 할 문화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손목에 차는 장치에 그 문화를 읽을 수 없다는 것. 이 대목이 가장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