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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보다 나은 아우 —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모듈러 45(TAG Heuer Modular 45)

8, 2018

최필식
IT 칼럼니스트

몇 년 전 디지털 장치 업계가 스마트워치 시장에 뛰어든 후로 ‘스위스 시계 명가들이 스마트워치에 뛰어들까?’라는 의구심이 커질 무렵, 이 질문에 맨 먼저 답을 내놓은 곳이 흥미롭게도 ‘태그호이어'(TAG Heuer)였다.

물론 태그호이어가 스마트워치 ‘태그호이어 커넥티드’를 2015년 말 내놓는게 정말 100% 자의적인 결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시 스마트워치 부문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연합 중이던 인텔과 구글의 꼬임에 넘어갔을 거라는 정황도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해도 제풀에 지쳐 쓰러질 거라던 스마트워치 시장에 시계 명가의 등장은 분위기 반전을 위한 한방이었다.

다만 태그호이어 커넥티드의 첫 인상은 시계 명가의 제품다운 느낌은 강하지 않았다. 다른 스마트워치보다 몇 갑절 비싼 1천500달러의 가격표를 붙였음에도 태그 호이어 디자인과 독점 워치페이스 디자인 만으로 값을 치러야 할 제품치고는 이를 대하는 패키지의 품격을 느낄 수 없는 점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태그호이어 애호가들이 이 제품을 쉽사리 포기 하지 않았다. 태그호이어 이름의 시계 가운데 가장 저렴한데다 품질 보증 기간 종료 후 추가금을 지불하면 오토매틱 쓰리 핸즈 무브먼트로 교환할 수 있는 탈출구를 남겨뒀기 때문이다. 스마트워치의 불확실성에 대한 안전 장치를 마련한 태그호이어의 현명한 대처는 결국 그 후속 제품을 준비할 여유를 만들어 준 모양이다. 스마트워치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감을 잡은 2세대 태그호이어의 스마트워치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모듈러(TAG Heuer Modular)는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준비된 듯한 인상이다.

 

확 달라진 패키징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모듈러라는 이름에서 ‘모듈러’ 의미를 짚기 전에 확 달라진 패키징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만약 1세대 태그호이어 커넥티드의 패키징이 형편없지만 않았어도 이 이야기는 생략했을 것이다. 시퍼런 플라스틱 케이스에 대충 구성품을 쑤셔 넣은 듯했던 1세대 태그호이어 커넥티드의 패키징에 충격을 받았던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대목이리라.

그래도 2세대 패키징은 1세대의 악몽을 벗어나는 확실한 변화를 줬다. 플라스틱 케이스를 떠올릴 겨를을 없애는 큼지막하고 단단한 상자형 패키징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또한 패키지 안쪽에 본체와 부속품을 담은 상자만 따로 분리해 꺼낼 수 있는 데다 충전 어댑터, USB 케이블 등 부속을 작은 종이 각에 나눠 담아 전자 제품의 부속품에서 느껴질 수 있는 싸구려 이미지를 최대한 감췄다.

확실히 2세대 패키지는 1세대보다 모든 면에서 나아졌다. 아마도 1세대를 거치지 않고 2세대만 접하는 이들이라면 실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만큼 고급스럽다. 다만 패키징은 태그호이어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는 아닐 듯하다. 값어치에 딱 어울릴 만큼의 정성을 발랐을 뿐이다.

모듈형 본체보다 중요한 러그 파트

2세대 태그호이어 커넥티드는 1세대와 생김새는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베젤에 숫자를 숫자판 디자인과 두터운 본체, 과격한 생김새의 러그(시계줄을 거는 본체의 고리 부분)와 굵직한 버튼부까지 그대로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해 보여도 다른 점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양각으로 오톨도톨하게 튀어 나왔던 숫자판은 모두 음각된 숫자판으로 교체했고, 약간 기울어진 베젤도 수평으로 조정했다.

하지만 확실한 차이는 다른 데 있다. 모듈러라는 이름은 그냥 붙인 게 아니다. 태그호이어 커텍티드는 본체와 러그가 완전히 분리되는 구조다. 러그에서 핀만 살짝 빼 시계줄을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본체를 통째로 빼는 독특한 방식을 적용했다.

때문에 이용자는 베젤 디자인과 시계 줄이 다른 태그호이어 커넥티드를 구매한 뒤 이를 바꿔가며 다양한 시계로 연출할 수 있다. 베젤 숫자판의 색상은 검정, 파랑, 노랑, 빨강, 주황과 더불어 숫자판을 없애고 다이아몬드를 수놓은 베젤과 러그를 갖춘 초고가 모델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태그호이어는 41mm와 45mm를 합쳐 모두 67개의 모델을 공개한 상황이다.

시계줄이 연결된 러그와 본체가 분리되는 모듈러 구조는 조금 신기해 보인다. 문제는 태그호이어가 러그와 줄 부분만 따로 판매하지 않는 점 다. 태그호이어가 판매 정책을 바꾸지 않는 이상
2개 이상의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모듈러 제품을 갖고 있어야만 본체와 시계줄을 바꿔 색다른 효과를 볼 수 있다. 1개만 쓰는 이들에게 모듈라는 전혀 장점이 없다는 이야기. 하지만 꾸준히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모듈라 제품을 쓰는 이용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새로운 본체을 구입할 때마다 남아 있는 러그는 여전히 유용하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러그가 이용자를 태그호이어에서 떠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직접 꾸미는 카레라 워치 페이스

스마트워치의 시계 화면을 바꿔주는 프로그램에서 불법적으로 소비하는 인기 많은 워치 페이스는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추정이지만 적어도 태그호이어 카레라는 분명 높은 순위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모터스포츠를 위한 정교한 크로노그래프를 내장한 카레라는 반세기 동안 세대를 거쳐 진화했고, 태그호이어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 됐다.

태그호이어는 커넥티드 모듈라의 재미는 바로 카레라 시계 화면에 있다. 기본적으로 태그호이어 커넥티드의 시계 화면은 카레라 시계였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다. 2세대도 몇 개의 클래식 카레라 시계는 웨어OS에서 손쉽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2세대는 수많은 태그호이어 카레라 시계 화면을 이용자가 직접 설계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설치한 뒤 태그호이어 스튜디오에서 다이얼과 메탈 효과, 야광 효과, 하이라이트 효과를 바꿔 가며 원하는 워치페이스를 직접 만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색상이 배제된 꺼짐 화면 조차 확실히 카레라 시계처럼 보이기 때문에 항상 켜짐 모드에서 보는 흑백 시계마저 즐겁다.

물론 다이얼이며 시계 바늘 등 정해진 템플릿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카레라 시계의 템플릿이 상당 수 반영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최대 4천 개의 카레라 시계 화면을 조합할 수 있다. 매일매일 태그호이어 카레라 시계를 하나씩 바꾼다면 거의
11년 가까이 다른 시계를 차는 셈이다. 본체와 러그의 분리가 하드웨어의 모듈러 개념이라면 태그호이어 스튜디오는 소프트웨어를 통한 모듈러 개념을 완성하는 듯하다.

 

잔재주 없이 우직한 스마트워치

보다시피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모듈러는 다른 스마트워치보다 훨씬 두껍지만,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 본체와 러그, 클립 등 모든 부위가 티타늄 합금(5등급 티타늄) 재질이라 외부 충격에 견디는 힘도 좋고 비틀림 같은 변형까지 차단한다. 물론 무게를 줄이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다만 버클이 두텁다 보니 손목에 찬 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편치는 않다.

이처럼 안정감 높은 스마트워치에 더 집중하다보니 바닥면은 충전용 접점 단자를 빼고 다른 센서는 전혀 넣지 않았다. 여전히 아톰 프로세서를 처리 장치로 쓰면서 인텔의 지원을 받고 있기에 태그호이어와 인텔 로고가 나란히 바닥면에 음각으로 새겨놓았다. 아톰 프로세서를 썼음에도 배터리 효율은 제법 괜찮다. 한번 충전으로 거의 이틀을 쓸 수 있었는데, 이전 세대보다 전력 효율은 좋아졌다. 참고로 리뷰를 한 모듈러 45는 512MB의 램과 4GB의 저장 공간을 갖고 있고, GPS와 NFC, 가속센서, 자이로스코프 및 진동 햅틱 엔진 등을 다양한 센서까지 모두 내장했다.

태그호이어 커텍티드 모듈러의 디스플레이 해상도는 400×400이지만 1.39인치로 커서 세밀함은 살짝 떨어진다. 그럼에도 Heuer 상표와 여러 크로노그래프, 시계 바늘과 타키미터를 그리는 픽셀들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이는 디스플레이 성능에만 의지하지 않고 표시되는 그래픽에 꽤 공들였다는 이야기다.

웨어OS 기반 앱을 실행하는 능력도 괜찮다. 그러나 굳이 앱 실행에 평가의 무게추를 옮길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태그호이어 커텍티드 모듈러는 확실히 이해하기 쉬운 장치라서다. 카레라 워치페이스를 중심으로 시계 관련 기능에 더 충실하고 좀더 오래 쓸 수 있는 튼튼하고 안정감을 주는 만듦새를 가진 스마트워치의 결론은 단순하다. 억지로 새 기능을 찾아서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시계의 본질에 잘 다가섰다는 것. 굳이 시계 명가를 들먹이지 않아도 스마트워치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그 최선의 답을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모듈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장점

단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