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시계 회사의 플래그십 브랜드
파슬은 단일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 시계 및 패션 잡화 브랜드를 거느린 대형 그룹사이기도 하다. 파슬 그룹은 파슬의 성공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회사이기에 여전히 파슬이 중추다. 얼마 전 리뷰했던 스카겐(파슬 그룹의 브랜드 중 하나) 편에서 파슬 그룹의 규모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했던 바 있으니 더 이상의 언급은 않겠다. 아무튼 파슬이 상당한 역량과 자원을 가진 회사라는 점은 분명하다.
노련미가 돋보이는 하드웨어
파슬 그룹은 137년 역사의 스위스 시계 브랜드인 조디악도 소유한 만큼(파슬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훨씬 짧지만, 대부분의 시계 회사들은 역사가 깊은 자회사를 인수함으로써 노하우를 흡수해 그룹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경우가 많다) 시계 제조에 있어 매우 노련하다. 이 시계는 베젤과 러그에 헤어 라인 가공과 폴리싱을 교차 적용했다. 이렇게 만들면 각도 변화에 따라 고급스럽게 빛난다. 케이스 측면은 가공이 쉽지 않은 곡선형으로 디자인했지만, 헤어라인 가공으로 약점을 감췄다. 그래서 피니싱에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크라운과 푸셔의 크기는 적당하며, 조작감도 뛰어나다. 푸셔를 누를 때나 크라운을 돌릴 때 손에 뚜렷하면서도 쫀쫀한 감촉이 느껴진다. 딸깍이거나 서걱거리는 싸구려와는 전혀 다르다.
30m 방수가 가능한 케이스는 지름 45mm로 크지만, 체감은 그보다 작아 보인다. 우악스럽지 않아 보이기에 난 이것을 장점으로 본다. 슬림한 베젤에 아무 기능이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만약 베젤이 두꺼웠다면 시계는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왜 베젤에 기능이 없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거다. 다만 베젤의 톱니 장식은 아날로그시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회전형 베젤의 조작감을 높이기 위해 적용하는 사양이기에 조금 우습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러그와 케이스의 용접이 말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것도 아쉽다. 참고로 이 부분의 처리는 IT 제조사인 삼성이 한 수 위였다.
스트랩의 가죽은 좋지 않을 것을 썼지만, 러버 스트랩 위에 장식적으로 얹어 기능성을 높였다. 도구 없이 스트랩을 교체할 수 있게 한 것은 이제 스마트 워치의 표준으로 여겨진다. 버클의 품질도 좋고, 착용감도 우수하다. 기본 제공되는 다이얼의 디자인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충전기가 작아 휴대하기 편하고, 자석이 있어 시계에 착 달라붙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최악의 소프트웨어
시계는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 GPS를 동해 피트니스 트래킹 기능을 수행하며,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주요 기능들의 알림을 받을 수 있다. 애플 워치나 갤럭시 워치처럼 놀라운 기능들이 적용되어 있진 않지만, 몽블랑 서밋에 버금갈 정도는 된다. 하지만 모든 기능들이 느려 터졌다. 버튼을 조작하면 기능들이 1초 뒤에 작동될 정도로 답답하다. 터치 인식도 잘 안된다. 솔직히 최악이다. 내 돈 주고 산 물건이면 반품했을 거고, 반품을 안 받아준다면 시계를 집어던져 부숴버리고 매장을 나왔을 것 같다. ‘오류가 발생해서 이러는 게 아닐까?’ 싶어 아주 여러 차례 초기화와 연결을 반복했을 정도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꼭 대형 세단에 스쿠터 엔진을 탑재한 것 같다. 원고를 쓰는 이 순간에도 짜증이 치솟는다.
총평
난 현재까지 총 8개의 스마트 워치를 체험하면서 IT 기업이 시계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단점들을 적나라하게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 시계는 ‘시계 브랜드가 IT 기업으로서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 스마트 워치를 만들면 이런 단점이 발생한다’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일러준다.
이 시계의 가격은 275달러이고, 국내에서 46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번에 리뷰한 스카겐의 팔스터도 295달러이지만 국내에서 49만원이었다. 파슬 코리아는 이렇게 국내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가격 정책을 펴고 있다. 이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갤럭시 워치가 10만원 더 싸다. 이 시계가 드림 워치가 아니라면, 구입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