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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 칼럼니스트의 스마트 워치 체험기 8편 — 애플 워치 4(Apple Watch 4)

3, 2019

김창규
시계 칼럼니스트

최고 품질의 케이스

솔직히 말해 ‘애플까’로서 평생 단 한 번도 애플의 제품을 구입해 사용한 적이 없다. MP3 플레이어는 음질이 나빴고(음질의 개인 선호도의 차이로 볼 수 있지만, 기자 시절 사무실에서 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아이팟은 지지율 10%만을 얻었다), 전화기는 통화 감도가 좋지 않았으며(초기작에 한해서), 컴퓨터는 프로그램 호환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플 제품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제품 마감의 완성도다. 그 어떤 제품에서도 외장만큼은 최고였다. 그래서 ‘앱등이’들과 설전을 벌일 때도 케이스 품질과 디스플레이의 우월성 얘기가 나오면 서둘러 대화를 끝맺곤 했다.

이 시계의 케이스 품질은 앞서 테스트한 시계들 중 몽블랑 서밋하고만 직접 비교가 가능하다. 몽블랑 서밋은 칼럼에도 적었듯이 타 메이커의 스마트 워치와 케이스 품질을 직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났다. 그런데 애플 워치의 마감은 그에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거의 모든 면이 곡면으로만 이루어진 애플 워치의 제작 난이도가 더 높기에, 동일한 마감 수준이라면 애플의 판정승인 셈이다. 어떤 부분에서도 표면 처리가 균일하지 못한 부분이 없었으며, 특히 글라스의 텔레비전형 돔 글라스를 매끈하게 가공한 것이 대단하다. 충전 단자가 있는 케이스 뒷면도 고급스러우며, 케이스 측면 푸셔와 크라운의 조작감도 뛰어나다. 다만 내가 체험한 것은 알루미늄 케이스 버전인데, 이것은 시계 케이스의 소재로 굉장히 생소한 것이라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워치 칼럼니스트로 10년 이상 활동하면서 아날로그시계의 소재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인들이 착용한 스테인리스 스틸 버전의 케이스를 여러 차례 실물로 봤는데, 그것의 케이스 품질 역시 훌륭했다.

디자인의 호불호

스위스제 고급 시계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면 들어보지 못했을 만한 재미난 사실이 하나 있다. 스위스의 독립 시계 메이커 중 비교적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모저앤씨(H. Moser & Cie)라는 브랜드가 있는데, 그들이 만드는 시계는 품질이 하이엔드급(롤렉스보다 위 등급)으로 평가받고 있을 만큼 뛰어나다. 그런데 이 회사가 고급 기계식 시계 컬렉션 중 하나로 스위스 알프 워치(Swiss ALP Watch)라는 라인을 몇 해전 발표했다. 짐작했겠지만 애플 워치의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했다. 이것은 일종의 패러디였는데, 반응이 괜찮은지 몇 년째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엄청난 건 이 컬렉션을 통해 미니트 리피터(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와 투르비용(민감한 부품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시간의 오차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이 결합된 초복잡 시계까지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초복잡 시계는 기계식 시계 분야의 꽃으로 시계 애호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가뿐히 억대를 넘기는 가격 때문에 ‘그림의 떡’으로 여겨지는 존재다. 자동차로 치면 500마력이 넘어가는 슈퍼카에 해당하는 초복잡 시계이지만, 애플 워치를 본 딴 디자인 때문에 시계 애호가들도 이 시계만큼은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만큼 호불호가 분명한 디자인이다.

기능

경험해 본 시계들 중 최상위 레벨이다. 헬스케어나 각종 알림 같은 기본 기능들은 섬세하며, 수다스럽지 않다. 아주 세련된 방식이다. 시계에는 매우 다양한 기능이 있지만, 가장 신기했던 건 받는 전화에 한해 통화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시계와 입의 거리가 70cm 정도 떨어져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통화 감도가 좋아 작업을 하며 통화를 할 수 있다. 통화 시 음소거 버튼과 볼륨 조절 기능까지 있어 전화기와 비교해도 불편하지 않은 정도다. 운전을 하며 통화할 때는 <전격 Z 작전>의 데이빗 핫셀호프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방수도 50m로 충분하고, GPS와 기압고도계가 있어 등산 및 레저용으로도 사용 가능하다. 아마도 이런 기능들 덕분에 나이키와도 협업을 진행한 것 같다.

단점

하드웨어적으로 크게 실망스러운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슬라이드형 러그를 완전히 결속시킨 뒤, 스트랩을 잡고 흔들면 유격감이 느껴진다는 거다. 육안으로 봐도 1mm 가량 유격이 생긴다. 이것만 아니었어도 난 애플의 케이스 제작 기술을 200~300만원대의 스위스 시계와 견줬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역시 IT 브랜드가 뭐 그렇지’라는 말을 나지막이 속삭일 정도로 큰 결함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만드느니 차라리 일반적인 시계에 사용하는 재래식 러그를 그대로 썼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총평

사각형 디스플레이가 애플 워치를 전통적인 시계의 형태로 보이지 않게 하는 주범이지만, 실제로 스마트 워치의 기능으로 사용하기에는 원형 디스플레이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다. 화면을 넘길 때 원형 디스플레이 시계에서 글자가 잘리는 부분(삼성은 이 부분을 매우 세련되게 극복했지만, 다른 모든 스마트 워치들은 그냥 글자가 잘리게 내버려 뒀다)이 없고, 반응 속도와 터치감 모두 우수하다. 에르메스에서 현존하는 가죽 스트랩 중 최고의 품질로 평가받는 애플 워치 전용 스트랩을 구입할 수 있으며, 그 디자인 선택지도 넓다. 기능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고, 배터리 용량도 충분하다. 스마트 워치를 싫어하지 않는 데다가 아이폰을 사용한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스마트 워치의 ‘끝판왕’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