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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 칼럼니스트의 스마트 워치 체험기 1편 — 크로나비 에이펙스(Kronaby Apex)

7, 2018

김창규
워치 컬럼니스트

12년 전부터 다양한 매체에 글을 써왔는데, 그중 9년을 시계 담당으로 일했다. 덕분에 그 기간 국내에 수입된 대부분의 시계를 실물로 만나봤으며, 2012년부터는 스위스 시계 박람회에도 해마다 참석해 시계 업계의 다양한 모습을 최전선에서 목격했다. 그래서 남들보다는 시계에 대해 잘 아는 편이다. 가끔 ‘시계 전문가’라는 황송한 이름으로 불릴 때도 있다. 사실은 간단한 시계 수리도 못한다. ‘전문가’라는 호칭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지식을 대중들에게 보다 알기 쉽게 전달하는 ‘칼럼니스트로서의 일’만큼은 열심히 해왔다.

 

스·알·못(‘스’마트 워치 잘 ‘알’지 ‘못’하는 사람)

현대 시계의 주류는 손목시계다. 회중시계, 탁상시계는 모두 비주류로 밀려나 수집가들의 몫이 됐다. 그러다 21세기 들어 갑자기 스마트 워치라는 게 등장했다. 기대와 달리 정통 손목시계를 위협하진 못했지만, 주류 입성에는 성공한 것으로 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정통파 시계의 애호가로서 이러한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고급 시계일수록 기능적인 면보다 심미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플 워치는 ‘IT Nerd’스러운 디자인이라서 그걸 구입한 사람들의 취향이 의심스러워질 지경이었고, 삼성 갤럭시 기어를 비롯한 다양한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 워치도 휴대폰 같은 다이얼 디스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계 애호가들이 시계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지 않고 제품부터 출시한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IT 업계 놈들이 시건방을 떤다’고 생각했다. 관심이 없다 보니 잘 모르는 시계의 종류가 됐다.

 

이전에 사용해 본 스마트 디바이스

스마트 워치를 구입할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다. 쓰고 싶지 않았어서. 하지만 비슷한 스마트 기기는 두 번 써봤다. 첫 번째는 지인에게 선물 받은 샤오미 미밴드였다. 신기한 기능이 있었던 건 인정하지만 디스플레이가 없으니 좀 헷갈렸고, 목욕탕에서 열쇠 반납을 잊고 나온 사람처럼 보이는 게 문제였다. 두 번째는 몽블랑이 출시한 E-스트랩. 시계에 연결할 수 있는 나토 스트랩, 거기에 추가로 결합할 수 있는 손가락만한 스마트 디바이스가 한 세트로 구성된 것이었다. 이건 시계와 독립되어 있어서 시계의 모양을 해치지 않을뿐더러, 명품 브랜드의 물건답게 고급스러웠다. 그래서 한동안 잘 차고 다녔는데 충전이 귀찮고, 셔츠 차림에는 불편해 자연스레 착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첫 스마트 워치 체험

한 달 정도의 기간이었지만, 크로나비 에이펙스는 내가 처음 제대로 경험해 본 스마트 워치였다. 첫인상은 내가 이때까지 본 스마트 워치 중 가장 정통 시계에 가까웠다. 아니 정확히 말해 외관상 정통 시계와 다른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한가지 놀라운 점은 기존의 유명 스위스 시계 디자인을 카피하지 않았다는 것. 사실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조차 신규 모델은 기존의 유명 시계 디자인을 어느 정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은 나오기 어려울 만큼 긴 세월 동안 다양한 시계들이 등장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로나비가 갖고 있는 다양한 특징들-케이스 측면을 얇게 보이도록 분할해 러그와 이어지게 디자인한 것, 케이스 두께의 절반을 차지하는 베젤 측면, 베젤과 케이스 사이에 위치한 크라운과 푸셔, 정면에서 봤을 때 상당히 얇아 보이는 베젤의 두께감-은 이때까지 어느 브랜드에서도 보지 못한 독창적인 부분이었다. 거기에 사파이어 크리스털 소재의 돔 글라스, 다이얼의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 플린지의 분 트랙, 빗면을 만들어 폴리싱과 새틴 브러시를 교차 적용한 러그, 다이얼 6시 방향에 위치한 서브 다이얼처럼 스위스 워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모습이 결합되어 있다. 정통 시계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시계 디자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익숙한 듯 보이지만, 새롭고 어색하지 않은 요소로 가득 찬 것.

이 시계는 디자인상 필드 워치에 속한다. 대표적인 필드 워치로는 롤렉스 익스플로러, 해밀턴의 카키 필드 등이 있다. 두 시계를 안다면 디자인의 골격이 비슷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기능적인 면에서도 필드 워치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높은 시인성, 야광 인덱스와 핸즈, 100m 방수 케이스, 긁힘에 강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같은 요소가 그것. 매치한 스트랩의 디자인 또한 최근 툴 워치 마니아들 사이에 유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크로나비가 얼마나 기존 시계 사용자들을 의식하고 시계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케이스의 피니싱도 만족스러울 정도까진 아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준수하다. 동 가격대의 스위스 시계와 비교해 특별히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 기능

크로나비의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해 휴대폰에 설치했다. 동기화하는 과정은 모든 핸즈를 다이얼 12시 방향에 위치시키는 것. 그다음 시작 버튼을 누르면, 휴대폰 시간에 맞춰 핸즈가 움직이며 모든 기능이 준비를 마친다. 다이얼은 메인 다이얼과 서브 다이얼 두개로 나뉘는데, 크라운을 눌러 시간 기능 이외의 별도 기능 표시가 가능하다. 메인 다이얼에서는 하루의 목표 운동량을 % 표시하거나 날짜, 세컨드 타임, 스톱워치(크로노그래프), 타이머(카운트다운)를 선택할 수 있다. 서브 다이얼에서는 하루의 목표 운동량 % 표시와 세컨드 타임 표시가 가능하다. 다른 스마트폰은 문자를 확인하고, 누구에게 전화가 왔는지를 알려주는 등 더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지만 디지털 디스플레이라는 것 자체가 우아하지 않다. 하지만 크로나비는 아날로그 방식을 택하고 있기에 사용자에게 기능 이상의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푸셔는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의 것만큼이나 부드럽게 작동하며, 크로노그래프 기능 작동시 핸즈가 하나로 합쳐져 째깍거리는 것도 귀엽다. 측정 시간이 1분을 지난 시점부터 핸즈는 분리되어 시간 핸즈는 분을 분 핸즈는 초를 알려주게 되는데, 이 아이디어 역시 흥미롭다.

시계는 쿼츠 무브먼트로 작동하며, 탑재한 배터리가 스마트 기능에까지 동력을 전달한다. 덕분에 별도의 충전 장치가 필요 없다. 스마트 기능의 사용이 시간 표시 기능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지, 스톱워치 기능을 계속 갖고 놀아도 시계에는 눈에 띄는 오차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도 휴대폰의 시간을 라디오 컨트롤 방식으로 받아 표시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쉬운 점

가장 아쉬운 건 야광 성능이다. 솔직히 처음 며칠간 이 시계의 인덱스와 핸즈에 야광 안료가 적용됐는지 알지 못했다. 햇살이 눈부시게 좋은 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후에야 조금 빛나는 듯 느껴져 처음 알게 된 거다. 안료가 어찌나 얇게 발렸는지 5분간 직사광선을 쐬고도 1분 만에 기능이 상실될 정도다. 경험해 본 모든 야광 시계 중 기능이 가장 나쁘다. 워낙 준수하게 만든 시계라 이 이외에 특별히 크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없다. 하지만 보다 나은 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크라운을 길게 눌렀을 때 메인 다이얼의 기능만이라도 변경된다면 좋을 것 같다. 기능을 바꾸기 위해 휴대폰을 자꾸 켜는 것도 귀찮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