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듣자 마자 기억 속에 저장된 이름 하나가 4년 만에 ‘로딩’됐다. 틱워치(TicWatch). 참 신기한 일이다. 이제 막 신선함을 뿜뿜 풍기며 등장한 스마트워치 제조사마저 금세 기억에서 지웠던 일이 수두룩한데 몇 년 전 틱워치의 기억이 재생될 줄이야.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돌이켜 보면 틱워치가 정말 인상적이기는 했다. 스마트워치가 막 대중화를 시도하던 2015년에 중국 시장에서 홀로 그 환경을 개척하려 했으니 말이다. 직접 스마트폰용 운영체제 틱웨어를 만들었고 용두나 크로노 버튼 없이 본체 옆을 문지르는 슬라이드 터치를 적용하는 독창적 설계를 지금도 기억한다. 다만 당시 틱워치가 중국어 이외의 언어를 지원하지 않았던 터라 구매까지 이어지진 못했고, 결국 틱워치에 관한 기억은 이쯤에서 저장을 마친 것이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틱워치의 기억을 좀더 이어갈 수 있게 만든 것이 틱워치 E다.
시계보다 디지털 디바이스에 가깝게…
한동안 못 본 사이긴 하나 틱워치 E에서 틱워치의 이미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둥근 디스플레이에 간결함을 추구했던 틱워치처럼 틱워치 E도 그 특징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인덱스나 타키미터처럼 시계처럼 보일 법한 장식을 없애고 얇은 베젤을 고수하면서도 용두나 크로노 버튼 없이 메뉴 버튼 하나만으로 갖춘 구성까지 똑같다. 다만 메탈 재질과 얇은 베젤로 일상적인 아날로그 시계에 더 가까운 틀을 완성했던 틱워치에 비하면 플라스틱 재질에 좀 투박한 모양새의 틱워치 E는 오히려 디지털 디바이스에 가까워진 느낌이 강하다. 흥미로운 점은 메뉴 버튼을 왼쪽에 두었다는 점이다. 사실 틱워치는 늘 왼쪽에 메뉴 버튼을 넣는다. 이것은 나쁜 결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옳은 결정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늘 몸통 오른쪽에 있던 용두를 대신하는 버튼의 역할을 볼 때 왼쪽은 비정상적이다. 하지만 스마트워치를 쓰는 이들은 왼쪽에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잘 안다. 오른쪽에 버튼을 두면 팔짱을 끼거나 책상을 짚을 때 꺾인 손목이 버튼을 눌러 오작동의 원인이 되어서다. 상식을 깨고 버튼의 위치를 바꾼 변화가 틱워치 E의 오작동을 일으키는 일을 막아낸 것이다. 본체를 뒤집어 보니 심박 센서와 충전 단자가 보인다. 접점식 충전 단자가 아무런 가림막 없이 노출되어 있지만, 어차피 시계를 차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영역이라 신경 쓰이진 않았다. 다만 땀이 닿아 부식되면 어쩌나 싶을 뿐이다. 그런데 틱워치 E를 장시간 착용 후 풀었을 때 손목에 긴 타원 모양의 자국이 생겼다. 뭔가 싶어 시계를 보니 심박 센서 주변에 길게 원 모양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피부를 오래 누른 탓에 생긴 것이다. 센서의 빛이 외부로 흐르지 않게 차단하려는 의도로 센서 주변의 가림막을 만든 듯하나 피부가 눌리는 것까지 예상하진 못한 모양이다.
틱워치 E와 틱워치 S
적용한 워치페이스는 MR.TIME ASTROBOY GALAXY
하드웨어의 기본만 집중하다
틱워치2의 작동을 책임졌던 자체 운영체제인 틱웨어는 틱워치 E에 실리지 않았다. 틱웨어 E의 탑재된 운영체제는 구글의 웨어OS. 운영체제를 바꾼 덕분에 언어는 물론 응용 프로그램도 넉넉해진 터라 국내에서 한국어로 설정한 뒤 구글 플레이의 웨어 앱을 내려받아 쓰는 데 전혀 문제 없다. 구글 어시스턴트나 걸음 걸이 및 운동 같은 건강 관리 기능, 심박 측정, 스마트폰의 알림 등 웨어 OS에서 할 수 있는 기본 경험은 빠짐 없이 누릴 수 있다. 적어도 웨어 OS 기반 스마트워치의 기본 만큼은 충실하다. 하지만 틱워치 E 자체의 특징을 따지면 조금 애매한 점이 있다. 틱워치 E는 굳이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웨어 OS에서 기본적인 일을 다할 수 있지만, 틱워치 제조사인 몹보이(Mobvoi) 앱을 깔면 좀더 세분화된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다. 일단 며칠 만이라도 틱워치 E를 차고 돌아 다니다 침대에 드러눕기 직전에 몹보이 앱을 열어 걸음수와 칼로리의 예상 소비량을 보는 것을 하루의 마지막 일과로 삼았다. 하지만 언제인지 모르지만 마지막 일과에 대한 의무감이 사라졌다. 애플의 헬스 앱과 너무 비슷한 화면 구성이 흥미를 떨어뜨렸고, 틱워치 E에서 똑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탓에 굳이 앱을 열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틱워치 E에 실려 있는 기본 워치 페이스도 어색하다. 스마트워치의 워치 페이스는 시간만 표시하는 게 아니라 하드웨어를 돋보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나 지나칠 정도로 기본 워치 페이스의 멋을 느끼기 어렵다. 287dpi의 1.4인치 OLED 디스플레이(400×400 픽셀)는 세밀함이 조금 떨어질 수 있으나 그 부족한 부분을 메운 기본 워치페이스를 찾는 게 힘들다. 너무 하드웨어에 집중한 나머지 이것을 놓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적용한 워치페이스는 MR.TIME CAMBIO GREEN
스마트워치 ‘잘알못’에 최적화되다
틱워치 E가 웨어OS의 거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동안 배터리나 작동 성능도 괜찮을 지 궁금했다. 512MB의 램과 4GB의 저장 공간처럼 쉽게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퀄컴 스냅드래곤 웨어 2100 대신 미디어텍 MT2601(1.2GHz 듀얼코어)의 능력은 궁금했다. 다행히 배터리는 한번 충전으로 하루는 무난하게 버틴다. 몹보이는 이틀을 견디는 배터리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그 주장에 다다른 적은 없었다. 접점식 충전 단자를 쓰는 덕분에 낮은 전압의 충전기에 꽂아도 잘 충전하는 점은 좋다. 또한 방진방수까지 갖춘 만큼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GPS까지 모두 갖췄다. 확실히 틱워치 E는 살펴 볼수록 스마트워치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기본 하드웨어는 잘 갖췄다. 한편으로 딱히 화려한 것도 아니고 제품을 돋보이게 만들 장치도 약한 부분에 대한 인색한 평가도 감내해야 할 제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품기를 빼고 실용적인 스마트워치라는 분명한 자기 자리는 차지할 듯하다. 이는 스마트워치를 잘 모르는 이들, 혹은 너무 복잡한 스마트워치 대신 활용 목적이 뚜렷한 이들에게 틱워치 E가 결코 애매한 답이 아니라는 의미다.
적용한 워치페이스는 MR.TIME DOWNHOLE
장점
- 간결한 만듦새
- 부담 없앤 가격
- 스마트워치의 기능 수행에 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춤
단점
- 완성도 낮은 워치페이스와 기본 앱
- 제원보다 짧은 배터리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