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지만, 스마트워치를 상상하며 여러 시안을 끄적거린 적이 있다. 그 때 남긴 메모 가운데 아날로그 시계와 디지털 특성을 모두 갖춘 것도 있었다. 진짜 바늘 달린 시계에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공존하는 스마트워치라면 디스플레이만 있는 가짜 시계라는 논란을 잠재우고 배터리 한계 같은 스마트워치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거라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이 콘셉트는 제조의 어려움부터 해결해야 한다. 시계 바늘 아래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의 가공도 그 중 하나였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콘셉트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 도전하는 스마트워치 제조사들이 속속 등장했고, LG 워치 W7은 진짜 시계 바늘과 디스플레이를 모두 가진 스마트워치의 최신작으로 등판했다.
그러나 LG 워치 W7은 상상을 현실로 가져온 스마트워치라는 점에서 반갑지만, 정작 하이브리드 스마트워치의 장점을 가졌는가에 대한 올바른 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상상의 천국에서 태어난 LG 워치 W7에게 냉혹한 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형벌일지 모른다.
패키지 | 스마트워치가 아닌 줄로만 알았다
배달된 검은 직육면체의 포장재를 보는 순간 나의 착각인 줄 알았다. ‘어라? 나는 스마트폰을 주문한 적 없었는데?’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패키지 상단에 굵은 상품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LG Watch W7’. 또 한번 이것이 스마트워치 패키지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LG 워치 W7은 미국에서 무려 450달러. 한국에서 40만 원에 판매 중인 스마트워치다. 하지만 종이를 압착해 반듯하게 만든 직육면체의 패키지는 그 가격을 합리화하는데 단 하나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패키지를 열고 극세사 천을 걷어 내자 손목줄을 반으로 접어 가지런히 누워있는 LG 워치 W7이 드러났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시계 바늘이다. 여느 스마트워치에서는 볼 수 없는 진짜 시계 바늘이 있다. 그 아래 디스플레이가 있지만, 디스플레이를 켜지 않으면 그냥 시계라고 해도 속을 수밖에 없는 만듦새다. 더구나 시계 베젤에 다이얼과 본체 오른쪽에 용두 역할을 하는 용두와 두 개의 기능 버튼 구조까지 일반 시계의 이미지를 짙게 남긴다.
시계를 감싸고 있던 플라스틱 포장을 꺼내자 그 아래에 충전 젠더와 USB 케이블, 어댑터, 설명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모두 일반적인 스마트폰 포장과 별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데다 각 부속도 스마트폰에서 쓰던 것과 똑같다. 충전 젠더는 탈착식이긴 하나 자석이 아니라 고리를 걸어 고정한다. 충전용 젠더는 USB-C 케이블을 쓰고 충전 어댑터는 일반 USB 단자를 쓴다.
별다른 흠이 없을 것처럼 보일테지만, 패키지부터 대부분의 부속이 검은 색인 것과 달리 전원 어댑터만 유일하게 하양이다. 이러한 불일치가 패키지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왜 그랬을까? 진짜 시계 바늘을 넣는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데 너무 많은 개발 및 제조 비용이 들었기 때문일까?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시계 바늘 | 애매함 넘어 불편의 ‘끝판왕’ 되다
LG 워치 W7의 전원 버튼을 눌렀을 때 저절로 ‘오~’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역동적인 인트로 애니메이션에 맞춰 시계 바늘이 화면을 따라 뱅그르르 한바퀴 도는 진풍경이 펼쳐진 때문이다. 로고 이미지와 통통 튀는 구슬만 보여주던 디스플레이 스마트워치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인상적인 신고식을 보니 LG 워치 W7은 뭔가 달라도 다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시계에서 좋았던 것은 딱 여기까지다. 첫 설정을 위해 언어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묘한 불편이 눈앞에 아른 거리기 시작했다. 여느 웨어 OS 스마트워치와 똑같은 설정인데 W7에서 더 불편할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화면이 작았나? 아니다. 해상도가 낮았나?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LG 워치 W7을 쓰면 쓸수록 불편함이 몸 속 노폐물처럼 쌓여만 갔다. 불편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원인은 시계 바늘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다른 스마트워치와 달리 진짜 시계 바늘과 디스플레이를 앞세워야 하는 스마트워치가 바늘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해야 하다니! 베젤의 다이얼과 LG 워치 W7의 시계 바늘 덕분에 디스플레이를 꺼둔 채 시간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해도 바늘로 인한 불편은 분명히 드러난다.
문제는 디스플레이를 켰을 때다. 알림을 확인하려고 디스플레이를 켜면 시계 바늘이 화면을 가린다. 알림 화면이나 정보를 볼 때 W7의 시계 바늘이 그대로 남아 화면을 방해하는 것이다. 가운데 시분침을 연결하는 부위가 둥글게 뚫려 있어 그 부분의 글자나 이미지도 볼 수 없다.
LG는 나름의 해결책을 넣었다. LG 워치 W7의 위쪽 버튼을 누르면 화면 전체를 살짝 위로 밀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시계 바늘을 일시적으로 수평으로 펼치거나 시분침이 겹쳐 덜 방해되게끔 만든 것이다. 겉으로는 좋은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손목만 비틀면 대부분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시계보다 결코 편하다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시계 바늘을 적용한 것을 무조건 잘못으로 몰 수는 없다. LG 워치 W7은 시계 바늘이 화면이 미치는 이용자 경험을 너무 단순하게 판단했을 뿐이다. 만약 화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시계 바늘을 썼다면? 만약 시계 바늘을 연결하는 디스플레이의 펀치홀을 더 작게 만들었다면? LG 워치 W7에 이 두 가지 질문에 맞는 답이 들어 있었다면 이 문단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LG 워치 W7의 시분침은 분 단위로 움직이는 데 반해 시계 화면 속 시분침은 초단위로 미세하게 위치를 바꾸기 때문에 이렇게 어긋나는 경우가 잦다.
기능 | 스마트워치도, 일반 시계도 어정쩡하다
LG 워치 W7의 개발자들은 아마도 진짜 일상에서 쓰는 시계처럼 쓸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니 운동을 위한 용도가 아니므로 심박 센서를 뺐을 것이고, 기본적인 위치 정보도 스마트폰에서 받을 테니 GPS마저 제외했을 것이다. 다른 장치와 간단하게 연결하거나 페이 기능도 굳이 소용없을 것이라 판단해 NFC도 넣지 않았을 것이다. 이용자에게 오직 시계로써 접근하기를 원했고 직접 망에 연결하는 장치가 아닌 스마트폰의 컴패니언 장치로써 쓰이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래도 나침반, 기압계, 고도계는 잘 작동한다.
그렇다고 스마트워치로써 기능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알림을 보여주거나 시계 화면을 바꾸고 구글 플레이를 통해 여러 앱을 내려받아 실행할 수 있다. 시계 바늘이 있기는 하나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웨어 OS나 앱을 다루는 것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웨어 OS의 기본 조작에서 달라진 것은 없으나, 시계 바늘을 가진 장치 특성에 맞춰 일부 인터페이스를 변경했다. 다른 웹OS 워치는 앱 화면에서 위아래로 스크롤하며 실행할 앱과 기능을 고르지만, LG 워치 W7은 바늘에 방해받지 않도록 시계 다이얼을 따라 둥글게 회전하며 앱을 표시한다. 이때 화면을 옆으로 터치하면서 앱을 선택할 수도 있고 용두를 앞뒤로 돌려도 앱이 회전한다. 하지만 앱 화면 이외에 설정 화면은 이러한 인터페이스를 채택하지 않고 고전적인 웨어 OS의 수직 스크롤을 그대로 쓰고 있다.
더불어 LG 워치 W7의 아래 버튼을 누르면 자주 쓰는 기능을 모으는 마스터 툴 모드로 들어간다. 초시계와 타이머, 나침반 같은 기능을 바로 실행할 수 있는데, 다른 앱으로 대체하지 못한다. 그나마 흥미를 가질 만한 기능이라면 초시계와 타이머다. 이 기능을 실행하면 시분침이 겹쳐지면서 초침처럼 작동한다. 또한 진짜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참고로 마스터 모드 버튼을 길게 누르면 디스플레이를 끄고 시계 전용 모드로 바꿀 수 있는데, 배터리를 최대 충전한 상태라면 120일 동안 재충전 없이 시계로 쓸 수 있다.
용두는 애플 워치처럼 앞뒤로 돌릴 수 있는 구조지만, 느낌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일단 용두가 바깥으로 충분히 튀어나오지 않은 데다 용두 표면을 감싼 고무의 면적이 너무 좁은 탓에 손가락이 제대로 닿지 않아 잘 돌지 않는다. 여기에 실제 용두처럼 인위적으로 걸리는 효과도 없고 햅틱 피드백을 넣은 것도 아니어서 용두를 돌리는 재미가 전혀 없다.
LG 워치 W7이 실제 시계 바늘을 갖고 있기 때문에 LG는 디지털 바늘을 제거한 기본 시계 화면 10종을 탑재했다. 사실 기본 시계 화면만 바꿔 쓰는 이용자는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데, 만약 디지털 시계 바늘을 가진 써드파티 시계 화면을 올리면 예상치 못한 문제로 이어진다. 길이와 폭이 다른 진짜 시계 바늘과 디지털 시계 바늘이 조화를 깨는 탓이다. 실제 바늘은 디지털 바늘의 일부를 가리는 한편, 폭 넓은 디지털 바늘이 진짜 바늘 양옆으로 튀어 나와 보기에 흉하다. 정말 이런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난 것을 보면 정말 상상을 뛰어 넘는 스마트워치라 할만하다.
LG 워치 W7의 바닥면. 심박 센서는 없고 충전을 위한 접점만 남아 있다. 제품 재고를 관리하는 스티커를 떼어냈더니 그 자리에 접착제가 남아 있어 보기 흉하다.
배터리 | 너무나 치명적인 결말
치명적인 문제는 배터리 시간에 있다. 결코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아침에 충전하고 나가 저녁에 돌아왔을 때 남은 배터리가 고작 40%도 되지 않는다. 만약 충전을 하지 않으면 다음 날 W7은 스마트워치로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길어 봐야 하루라니. 혹시 테스트 중인 시계의 문제는 아닐까 하는 의문도 잠시. LG 워치 W7에 대한 외국의 리뷰 속에 똑같은 지적은 내가 실험한 제품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시켜줬다. 심박 센서도 없고, GPS도 빼고, NFC까지 제거하며 그토록 시계 기능을 강조했건만, 어찌하여 LG는 배터리로 작동하는 장치에 있어야 할 ‘끈기’라는 미덕을 채우지 못했을까? 이전 세대의 스냅드래곤웨어 2100 프로세서와 고작 240mAh의 배터리 용량으로 며칠을 버티겠다는 오판은 누가 했을까?
물론 배터리를 모두 소모해도 시계는 작동한다. 디스플레이를 켤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을 잃은 뒤라도 W7은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탈탈 털어 길죽한 분침을 움직인다. 최대 3일까지 바늘을 달고 있는 시계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내며 사명을 다하는 듯하다. 하지만 스마트워치의 능력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계만 돌아가는 이 안쓰러운 모습을 칭찬할 수는 없다. LG 워치 W7은 스마트워치니까. 단언하는데, 1세대는 건너 뛰기를 권한다. 2세대가 나올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장점
- 디스플레이가 꺼져도 시간 확인 가능
- 배터리 방전 후 며칠 더 작동하는 시계 기능
단점
- 디스플레이 모드에서 지나치게 짧은 배터리 시간
- 잘 보이지 않는 시계 바늘
- 혼란스러운 인터페이스
- 이용자가 느끼는 가치에 비해 비싼 가격
- 장점보다 더 찾기 쉬운 단점